전체 글66 석류도란? 색 망한 썰 - 고동바림 너무 진하게 했다가 배운 것 석류도를 처음 그렸을 때 색을 완전히 망쳤습니다.석류 하면 선명하고 투명한 붉은색입니다. 석류 알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색감. 그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결과물은 칙칙하고 탁한 갈색에 가까운 뭔가가 나왔습니다. 고동바림을 너무 진하게 넣어버린 겁니다.민화에서 고동색은 그림자와 깊이를 만드는 데 씁니다. 그런데 석류에 고동을 너무 강하게 올리면 어떻게 되냐면, 석류 특유의 맑고 투명한 느낌이 완전히 죽어버립니다. 그 선명한 빨간색이 사라지고 뭔가 오래된 것 같은 탁한 색이 됩니다. 그날 그림을 보면서 한참 멍했습니다. 석류도란 무엇인가석류도는 석류를 소재로 그린 민화입니다. 다산과 번성을 상징하는 길상화입니다.석류가 왜 다산의 상징이 됐는지는 열매를 쪼개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겉은 단단한 껍질인데 안을.. 2026. 2. 9. 초충도란? 풀이랑 벌레를 왜 그려요 - 이해 못 했던 내가 달라진 이유 처음 초충도를 봤을 때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됐습니다.민화에 풀이랑 벌레라니. 호랑이도 있고 봉황도 있고 모란도 있는데, 왜 하필 벌레입니까.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가 유명하다는 건 알았는데 왜 유명한지는 몰랐습니다. 그냥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그림이고, 섬세하게 잘 그렸네 정도로만 알았습니다.민화를 10년 그리면서도 초충도는 한참 안 그렸습니다. 별로 끌리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마당에서생각이 바뀐 건 그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여름 어느 날 마당을 보다가 풀잎에 앉은 나비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햇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걸 보고 있다가, 문득 이게 초충도구나 싶었습니다. 이 장면을 그린 거구나.그때 처음으로 초충도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대단한 소재를 그린 게 아니라.. 2026. 2. 9. 기명절지도란? 솔직히 처음엔 내눈에 안 예뻤다 처음 기명절지도를 배정받았을 때 속으로 좀 실망했습니다.전시를 앞두고 선생님이 소재를 나눠주셨는데 제 차례에 기명절지도가 왔습니다. 옆 사람은 봉황도, 또 옆 사람은 화조도. 근데 나는 그릇이랑 과일이라니. 그냥 정물화잖아요. 민화인데 왜 이걸 그려야 하지 싶었습니다. 예쁠 것 같지도 않았고요.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가 기명절지도를 몰랐던 겁니다. 기명절지도가 뭔지는 알았는데기명절지도는 그릇, 문방구, 과일, 꽃 같은 생활용품을 책장이나 선반 위에 배치해서 그린 민화입니다. 기명(器皿)은 그릇과 도구, 절지(折枝)는 꺾은 가지나 꽃을 뜻합니다.조선 시대 사람들은 이 그림을 집 안에 걸어두며 학문과 풍요, 삶의 안정을 기원했습니다. 책가도와 비슷한 맥락인데, 책가도가 책 위주라면 기명절지도는 더 다양한 생활.. 2026. 2. 8. 노안도란? 부모님께 그려드린 그림 - 갈대와 기러기에 담긴 편안한 노후의 바람 몇 해 전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노안도를 그려드렸습니다.장수 그림으로 십장생도를 그려드릴까 하다가 노안도를 선택했습니다. 십장생도는 웅장하고 힘찬 느낌인데, 두 분께 드리고 싶은 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래 사세요보다는 편안하게 사세요에 가까웠습니다. 그 마음을 담기에 노안도가 딱이었습니다. 제목에 숨겨진 장치노안도를 처음 배울 때 제목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습니다.노안(蘆雁)은 갈대와 기러기입니다. 그런데 발음이 노안(老安)과 똑같습니다. 늙어서 편안하다. 그림 제목 자체가 이미 소망을 담고 있었습니다.박쥐가 복(蝠)과 복(福)의 발음이 같아서 복의 상징이 된 것처럼, 노안도도 갈대와 기러기를 그렸지만 그림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평안한 노후가 떠오르도록 만든 그림입니다. 조선 사람들의 언어 감각이 느껴.. 2026. 2. 8. 매작도란? 매와 까치를 함께 그린 이유 - 강함과 길함이 만나는 민화 매작도를 처음 봤을 때 조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호작도는 이해가 됐습니다. 호랑이가 나쁜 기운 막고, 까치가 좋은 소식 전하고. 역할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매작도는 달랐습니다. 매도 새고 까치도 새인데, 왜 이 둘을 같이 그릴까. 처음엔 그냥 새 두 마리 그린 그림인 줄 알았습니다.알고 보니 이 조합이 꽤 치밀합니다. 매는 어떤 새인가민화에서 매는 까치나 학과 완전히 다른 성격의 새입니다.맹금류입니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높은 곳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는 시선. 빠른 판단으로 목표를 포착하는 능력. 이 때문에 매는 강인함과 결단력의 상징이 됐습니다. 혼란을 정리하고 질서를 세우는 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판단력. 민화 속 매는 단순히 사냥하는 새가 아니라 그런 태도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민화 속.. 2026. 2. 7. 용호도란? 용과 호랑이를 한 화면에 그리는 민화 - 가장 어렵고 가장 강한 그림 용호도를 처음 그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운룡도도 그려봤고 호작도도 수없이 그렸지만, 이 둘을 한 화면에 넣는 건 차원이 달랐습니다. 용은 곡선의 존재고 호랑이는 직선의 존재입니다. 이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조형 언어를 하나의 화면 안에서 싸우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스케치만 열 장 넘게 버렸습니다. 용과 호랑이, 왜 같이 있나용호도에서 이 두 존재가 함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용은 하늘의 존재입니다. 상상의 동물이고, 비를 내리고 구름을 다스리며 보이지 않는 질서를 관장합니다. 호랑이는 땅의 존재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고, 잡귀를 쫓는 수호자이며 눈앞의 현실을 지키는 힘입니다.하늘과 땅, 이상과 현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눈에 보이는 세계. 이 둘이 한 화면에 마주.. 2026. 2. 7.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