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9 문배도란? 연말이면 화실 어르신들이 찾는 그림 - 현관문에 못 붙이니까 옆에 세워두는 그림 매년 연말이 되면 화실에서 어르신들이 문배도를 그립니다.다른 시기에는 모란도도 그리고 화조도도 그리시는데, 연말이 가까워지면 꼭 문배도 얘기가 나옵니다. 새해를 앞두고 집에 붙일 그림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요. 그 모습을 보면서 문배도가 단순히 옛날 민화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걸 매년 느낍니다.근데 요즘은 현관문에 직접 붙이기가 어렵잖아요. 아파트 문이고, 스티커도 안 붙는 재질이고, 관리사무소에서 뭐라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어르신들이 하시는 방법이 화판에 붙여서 현관 문 옆에 살짝 세워두는 겁니다. 문에 붙이지는 못해도 문 옆에는 있을 수 있으니까요.그걸 처음 들었을 때 웃기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습니다. 문배도란 무엇인가문배도는 집 문에 붙이기 위해 그린 민화입니다. 처음부터 문을 위해.. 2026. 2. 12. 사군자란? 매화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 - 여백을 남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사군자 중에 뭘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면 저는 매화라고 대답합니다.난초도 좋고 대나무도 좋은데, 매화는 뭔가 특별합니다. 아직 겨울인데 피어나는 꽃. 다른 꽃들이 전부 잠들어 있을 때 혼자 나와 있는 존재. 그 고집스러움이 마음에 듭니다. 민화를 10년 그리면서 계절마다 매화를 그렸는데 그릴 때마다 새롭습니다.그런데 사군자를 그리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낀 건 꽃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여백이었습니다. 사군자란 무엇인가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함께 이르는 말입니다. 이 네 가지 식물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사군자라고 합니다.그런데 사군자는 그냥 식물 네 종류를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각각의 식물이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매화는 절개와 인내, 난초는 고결함, 국화는 절제, 대나무.. 2026. 2. 11. 백동자도란? 하얀 동자님인 줄 알았다 - 아이 100명 그림의 진짜 의미 백동자도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하얀 동자님을 말하는 건가 싶었습니다.백동자(百童子). 백은 하얀 백(白)인 줄 알았습니다. 흰옷 입은 동자 그림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백은 일백 백(百)이었습니다. 아이가 백 명. 그 말을 듣고 뜨악했습니다. 아이 백 명을 한 화면에 다 그려 넣는다고요?처음 백동자도를 실제로 봤을 때 진짜로 세어보고 싶었습니다. 백 명이 진짜 다 있는 건지. 세다가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백 명이 다 있는 건 아니다나중에 알게 된 건데, 백동자도에서 백(百)은 정확히 백 명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아주 많음, 끝이 없음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민화에서 숫자는 현실의 계산 단위가 아니라 소망을 담는 상징 언어입니다. 백동자도의 백은 자손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숫자로 .. 2026. 2. 11. 박쥐도란? 아직 안 그린 그림 - 복의 상징이지만 코로나가 바꿔 놓은 것 어릴 때 놀이터에서 박쥐를 본 적이 있습니다.해가 질 무렵 하늘에서 뭔가 이상하게 날아다니길래 처음엔 큰 나방인 줄 알았습니다. 가까이 보니 박쥐였습니다. 그때 기억이 신기하다, 였습니다. 무섭다가 아니라요. 뭔가 다른 생물 같은 느낌.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닌 것이 어둠 속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묘하게 매력적이었습니다.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박쥐 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 신기하던 동물이 어느 순간 전염병의 상징처럼 돼버렸습니다. 민화에서 박쥐는 복의 상징인데, 지금 시대에 박쥐도를 그려서 선물로 드린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그래서 박쥐도는 아직 안 그렸습니다. 언젠가는 그려봐야지 하면서도 우선순위에는 없습니다. 박쥐가 복의 상징이 된 이유그래도 의미는 정말 좋습니.. 2026. 2. 10. 화훼도란? 겨울에 봄을 그리는 일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민화 주제 민화를 그리다 보면 계절을 두 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밖은 한겨울인데 화면 안에는 꽃잎이 날리고 있습니다. 손은 차갑고 창밖엔 눈이 올 것 같은데, 붓 끝에서는 분홍 꽃잎이 하나씩 피어납니다. 화훼도를 그릴 때의 그 느낌이 좋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먼저 불러오는 것 같은 기분.그래서 화훼도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민화 주제입니다. 화훼도란 무엇인가화훼도는 꽃과 풀, 나무 등 식물을 중심 소재로 그린 민화입니다. 화훼(花卉)는 꽃과 초목을 뜻합니다.민화에서 화훼도는 가장 널리 그려진 주제 중 하나입니다. 특정 계층이나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꽃이라는 소재 자체가 워낙 직관적이고 친숙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화훼도 속 꽃들은 그냥 예쁜 .. 2026. 2. 10. 석류도란? 색 망한 썰 - 고동바림 너무 진하게 했다가 배운 것 석류도를 처음 그렸을 때 색을 완전히 망쳤습니다.석류 하면 선명하고 투명한 붉은색입니다. 석류 알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색감. 그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결과물은 칙칙하고 탁한 갈색에 가까운 뭔가가 나왔습니다. 고동바림을 너무 진하게 넣어버린 겁니다.민화에서 고동색은 그림자와 깊이를 만드는 데 씁니다. 그런데 석류에 고동을 너무 강하게 올리면 어떻게 되냐면, 석류 특유의 맑고 투명한 느낌이 완전히 죽어버립니다. 그 선명한 빨간색이 사라지고 뭔가 오래된 것 같은 탁한 색이 됩니다. 그날 그림을 보면서 한참 멍했습니다. 석류도란 무엇인가석류도는 석류를 소재로 그린 민화입니다. 다산과 번성을 상징하는 길상화입니다.석류가 왜 다산의 상징이 됐는지는 열매를 쪼개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겉은 단단한 껍질인데 안을.. 2026. 2. 9. 이전 1 2 3 4 5 6 7 8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