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실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시장에 선생님 해태 작품이 걸려 있었는데, 어떤 분이 오시더니 그림을 한참 보다가 이거 해태입니까? 하고 물었답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바로 사가셨다고요. 설명도 없이, 가격도 많이 안 물어보고.
그 이야기를 듣고 웃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왜 그러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해태도란 무엇인가
해태도는 해태라는 상상의 동물을 그린 민화입니다.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뿔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신수입니다. 서울 경복궁 앞에 있는 그 석상이 해태입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존재입니다.
해태의 특별한 점은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능력이 있다고 전해진다는 겁니다. 전설에 따르면 죄인을 보면 뿔로 들이받고, 무고한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해태는 정의와 공정함의 상징이 됐습니다.
왜 궁궐 앞에 세웠을까
해태 석상이 경복궁 앞에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 한양은 목조 건물이 많아 화재가 큰 위협이었습니다. 해태는 불의 기운을 다스리고 재앙을 막는 존재로 인식됐습니다. 궁궐이나 관청 앞에 해태를 세워 화재와 재앙을 막고 기강을 바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국가의 상징적 수호자였던 셈입니다. 그게 민화로 내려오면서 가정의 수호자가 됐습니다. 궁궐 앞의 해태와 집 안의 해태도는 같은 상징이지만 역할의 온도가 다릅니다. 하나는 나라를 지키고, 하나는 가정을 지킵니다.
사업하는 분들이 찾는 이유
해태가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해태는 정의와 공정함의 상징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존재입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온갖 일이 생깁니다. 거래, 계약, 사람 관계. 그 안에서 기준이 흔들리지 않기를, 부당한 일은 막아지기를, 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겁니다.
해태는 그 마음을 담기에 딱 맞는 상징입니다. 복을 부르는 그림이 아니라 나쁜 것을 막아주는 그림입니다. 잘되게 해달라는 기원보다, 잘못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원. 사업하는 분들의 불안한 마음을 생각하면 해태가 왜 선택받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 사업가 분이 이거 해태입니까? 하고 물어보는 순간 이미 마음이 정해진 상태였던 거 아닐까요.
해태와 해치
오늘날 해태는 서울 상징 캐릭터 해치로도 이어집니다.
해치가 해태에서 왔다는 거 아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같은 존재입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상징이 지금은 서울 홍보 캐릭터가 됐습니다. 위엄 있던 존재가 귀엽게 바뀐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오래 살아남은 상징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민화에서 해태는 위엄과 해학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그려집니다. 궁궐 앞 석상처럼 딱딱하지 않고, 어딘가 인간적인 면이 있습니다. 크고 단단해 보이지만 무섭기보다는 든든한 느낌. 그게 민화 해태의 매력입니다.
해태도를 그릴 때
해태를 그릴 때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눈과 뿔입니다.
눈에 힘이 있어야 합니다. 위협적이지 않으면서도 날카롭게. 그 균형이 해태를 해태답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뿔은 너무 크면 이상하고 너무 작으면 해태 같지 않습니다. 갈기도 풍성하게 표현해야 존재감이 삽니다.
그리고 나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그림 앞에 서면 든든하다는 느낌이 나야 합니다. 강하지만 나를 지켜주는 존재. 그 감각을 그림에서 느낄 수 있을 때 해태도가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해태입니까? 하고 물어보는 분이 또 나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