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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도란? 전시장에서 처음 봤을 때 - 검정 바탕에 금으로 그린 그 그림

by mybottari 2026. 2. 14.

기린무늬 자수흉배 -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제1유형

 

 

이번 단체 전시 준비를 하다가 옆에서 누군가 기린 흉배도를 그리는 걸 처음 봤습니다.

검정 바탕에 금먹으로 그리고 있었는데, 딱 봤을 때 와, 소리가 나왔습니다. 기린이라는 소재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화려한데 무겁지 않고, 신비로운데 화면이 정리돼 있고. 민화를 10년 그렸는데도 그렇게 표현한 건 처음 봤습니다.

그날부터 기린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린도란 무엇인가

기린도는 기린이라는 상상의 동물을 그린 민화입니다.

여기서 기린은 아프리카 기린이 아닙니다. 목이 긴 그 동물과 이름만 같고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기린은 용의 머리, 사슴의 몸, 소의 꼬리, 말의 발굽을 가진 신수입니다. 온몸에 비늘이 있고 이마에 뿔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봉황도나 해태처럼 상상의 동물입니다. 그런데 기린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만 나타난다는 전설 때문입니다. 기린의 출현이 곧 나라가 평안하고 정치가 올바르다는 신호였습니다. 힘으로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덕으로 다스리는 시대를 알리는 존재입니다.

 

흉배도란 무엇인가

그날 전시장에서 본 게 기린 흉배도였습니다.

흉배(胸背)는 조선 시대 관복에 달았던 장식 천입니다. 가슴과 등에 붙이는 것으로, 품계에 따라 다른 동물이 그려졌습니다. 무관은 호랑이나 곰, 문관은 학이나 공작. 그리고 특별한 자리에는 기린이 사용됐습니다.

흉배도는 그 흉배의 문양을 독립된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원래 자수로 만들어지던 것을 붓으로 그린 것이라 정교하고 장식적입니다. 검정 바탕에 금먹으로 그리면 자수 흉배 특유의 화려함이 살아납니다.

그걸 처음 봤을 때 같은 기린인데 바탕 색 하나로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검정 바탕에 금먹이 만드는 것

민화는 보통 흰 바탕에 그립니다. 그게 기본입니다.

그런데 검정 바탕에 금먹으로 그리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어두운 배경 위에서 금색 선이 빛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린의 비늘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느낌. 같은 선인데 흰 종이 위의 선과 검정 위의 선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기린처럼 신성한 존재를 표현할 때 왜 이 기법을 쓰는지 그걸 보면서 이해했습니다.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느낌. 기린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 배경 하나로 전달됩니다.

 

기린이 담고 있는 것

기린은 성질이 온순하고 풀을 밟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을 해치지 않는 존재입니다.

힘이 있지만 함부로 쓰지 않는 것, 권위가 있지만 포용하는 것. 그게 기린이 상징하는 덕입니다. 해태가 나쁜 것을 막아내는 강한 수호자라면, 기린은 좋은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온화한 존재입니다. 같은 상상의 동물인데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집 안에 기린 그림을 두는 것은 복을 기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올바름과 덕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잘 살고 싶다는 욕망보다 바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운 그림입니다.

 

언젠가는 그려보고 싶은 그림

기린 흉배도를 보면서 언젠가 꼭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정 바탕에 금먹으로 기린을 그리는 작업은 까다로울 겁니다. 흰 바탕과 달리 수정이 어렵고, 금먹은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늘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표현해야 그 화려함이 삽니다.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도전해보고 싶은 소재가 있습니다. 기린 흉배도가 그중 하나가 됐습니다. 전시장에서 옆 사람이 그리는 걸 보면서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민화를 오래 하다 보면 이렇게 새로운 도전 목록이 계속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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