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 되면 화실 분위기가 바뀝니다.
문배도 그리고, 십이지신도 그리고, 그리고 삼재부를 그립니다. 처음엔 그냥 따라 그렸습니다. 선생님들이 그리니까 좋은 게 좋다고 같이 그렸습니다. 삼재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삼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세 가지 재앙이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그리는 그림이 삼재부였습니다.
삼재란 무엇인가
삼재(三災)는 세 가지 재앙입니다.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 물, 불, 바람으로 인한 재난입니다. 사람마다 삼재가 드는 해가 다르고, 삼재가 드는 3년 동안은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들삼재, 눌삼재, 날삼재 순서로 3년이 지나면 빠져나옵니다. 들삼재가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삼재부는 이 삼재를 막기 위해 그리는 그림입니다. 부적의 성격을 가진 그림입니다. 연말에 새해를 앞두고 삼재가 드는 사람들을 위해 그립니다. 그래서 연말마다 화실에서 유행처럼 그려집니다.
일반적인 삼재부와 내 삼재부
삼재부에는 보통 매 세 마리가 등장합니다.
매는 강한 힘과 날카로운 눈으로 재앙을 쫓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세 마리가 삼재를 각각 막는다는 의미입니다. 흰 바탕이나 붉은 바탕에 단순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적의 느낌으로.
저는 다르게 그립니다. 금먹 바탕에 매 한 마리와 호랑이를 함께 그립니다. 매는 위에서 날개를 펼치고, 호랑이는 아래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꽃도 함께 들어갑니다. 화려한 게 좋습니다. 부적이라도 무겁고 어두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는 하늘에서 재앙을 쫓고, 호랑이는 땅에서 막습니다. 위아래로 지키는 구조입니다. 이 조합이 더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금먹 바탕의 문제
금먹 바탕 위에는 다른 색이 전혀 안 먹힙니다.
올려도 튕겨나옵니다. 그래서 금먹 바탕 삼재부는 먹선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매의 깃털, 호랑이의 털무늬, 꽃잎 하나하나. 전부 먹선으로만 표현합니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립니다. 일반 바탕에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걸립니다. 금먹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위에 올리는 먹선은 수정이 안 됩니다. 금먹 위에 한번 그은 선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호랑이 털무늬가 특히 손이 많이 갑니다. 호피도에서도 느꼈지만 털 하나하나를 먹선으로 표현하는 게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금먹 바탕이면 실수했을 때 덮을 수가 없으니 더 긴장됩니다.
그래도 금먹을 고집하는 이유
완성됐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금빛 바탕 위에 검은 선으로만 표현된 매와 호랑이. 화려하면서도 강합니다. 색을 쓰지 않았는데 오히려 더 선명합니다. 금먹이 배경이 되면서 먹선 하나하나가 살아납니다.
삼재부는 의미가 분명한 그림입니다. 재앙을 막겠다는 마음. 그 마음에 금먹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번거로워도 매년 이 방식으로 그립니다.
삼재가 뭔지 모르던 때부터
지금은 삼재부를 그릴 때 그 의미를 알고 그립니다.
처음엔 진짜 몰랐습니다. 선생님들이 연말마다 그리니까 따라 그렸습니다. 좋은 게 좋다고. 나중에 삼재가 뭔지 알게 됐고,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다가 금먹 바탕 매+호랑이 구성이 됐습니다.
부적처럼 그리는 그림인데 저는 가장 공을 들이는 그림 중 하나가 됐습니다. 연말마다 그립니다. 삼재가 뭔지도 모르던 때부터 지금까지,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꺼내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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