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장생도를 처음 그렸을 때 솔직히 막막했습니다.
해, 산, 물, 돌, 소나무, 거북, 학, 사슴, 불로초, 구름. 열 가지를 한 화면에 다 담아야 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조차 몰랐어요. 각각의 소재도 만만치 않은데 그걸 전부 조화롭게 배치해야 하니까요. 민화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이건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든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면 그릴수록 십장생도가 왜 민화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십장생도란 무엇인가
십장생도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린 민화입니다. '십장생(十長生)'이란 장수를 상징하는 열 가지 소재를 말합니다. 해, 산, 물, 돌, 소나무, 거북, 학, 사슴, 불로초, 구름이 기본 구성 요소입니다.
이 열 가지는 모두 쉽게 사라지지 않거나 오래 존재하는 자연물과 동물입니다. 사람의 삶이 이것들처럼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이었습니다. 의학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병 하나로도 목숨을 잃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래서 장수에 대한 바람은 지금보다 훨씬 간절했고, 십장생도는 그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노부모가 있는 가정이나 환갑, 혼례 같은 중요한 날에 십장생도를 걸어두던 풍습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소망을 넘어 가족 전체의 바람을 담은 그림이었습니다.
열 가지 상징, 각각 무슨 뜻일까
십장생 하나하나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습니다. 직접 그리면서 소재마다 의미를 찾아보다 보니 더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해는 매일 떠오르는 존재입니다. 지고 다시 떠오르는 반복 속에 영원성과 순환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산과 돌은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굳건하고 변하지 않는 삶을 상징합니다. 물은 끊임없이 흐르며 생명을 유지시킵니다. 멈추지 않는 생명력이자 장수의 흐름입니다.
소나무는 한겨울에도 푸릅니다. 변하지 않는 생명력과 절개를 동시에 상징하는 소재입니다. 십장생도에서 소나무는 구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거북은 실제로 오래 사는 동물이기도 하고, 단단한 등껍질이 오랜 세월을 견디는 이미지를 줍니다. 학도 장수의 대표 상징입니다. 고고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신선 세계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사슴은 불로초를 찾아다닌다는 전설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래서 건강과 불사의 의미를 지닙니다. 불로초는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상상의 약초입니다.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소망을 상징으로 담은 것입니다. 구름은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로 신성함과 길함을 의미합니다.
이 열 가지가 한 화면에 모였을 때, 각각의 상징이 더 강해집니다. 그게 십장생도가 단독 소재 그림들과 다른 이유입니다.
십장생도를 그릴 때 가장 어려운 것
십장생도의 핵심은 구도입니다. 열 가지 소재를 화면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너무 빼곡하면 복잡해 보이고, 너무 듬성듬성하면 허전합니다.
저는 처음에 소나무를 중심에 크게 잡고 나머지를 주변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학은 하늘 쪽에, 거북과 사슴은 아래쪽에, 구름은 상단에 흩뿌리듯 넣었습니다. 여러 번 그리다 보니 각 소재마다 자연스러운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또 십장생도는 병풍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폭에 다 담기보다 여러 폭에 나눠 펼쳐지는 구성이 더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환갑 잔치나 중요한 행사 때 쓰이던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유효한 십장생의 의미
십장생도를 그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이 그림을 걸어두며 빌었던 마음과, 지금 우리가 건강을 바라는 마음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부를 바라는 모란도, 좋은 소식을 바라는 호작도와 달리, 십장생도는 가장 기본적인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것. 그 마음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오늘날 십장생도는 인테리어 소품이나 디자인 요소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구도를 유지하면서 색감을 현대적으로 바꾼 십장생 그림들이 생활 공간 안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습니다. 민화가 박물관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지금도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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