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화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완성한 그림이 모란도였습니다.
태교로 붓을 잡았던 그때, 선생님이 처음 내준 과제가 모란이었어요. 화려하고 크고, 색도 풍부하고. 꽃을 그리는 거니까 어렵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리기 시작하니 꽃잎이 몇 겹인지, 어떤 순서로 색을 올려야 하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어요.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모란이 그냥 예쁜 꽃이 아니라는 것을요.
모란도란 무엇인가
모란도는 모란꽃을 주제로 그린 민화입니다. 모란은 예로부터 '꽃 중의 왕'이라 불렸습니다. 크고 풍성한 꽃잎이 여러 겹 겹쳐진 모습이 그 어떤 꽃보다 화려하고 당당하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이 꽃의 형태에서 부귀와 영화를 읽었습니다. 꽃잎이 가득 피어있는 모습이 재물이 넘치는 것처럼 보였고, 강한 색감과 생명력이 권위와 번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란도는 단순히 꽃을 예쁘게 그린 그림이 아니라, 부와 명예, 집안의 번영을 기원하는 길상화로 쓰였습니다.
혼례나 집들이처럼 새 출발을 알리는 날에 모란 그림을 선물하거나 집안에 걸어두는 풍습이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모란도에 담긴 상징들
모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나비나 새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비는 다산과 기쁨을 상징합니다. 새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존재입니다. 모란 옆에 나비와 새가 함께 그려지면, 그림은 단순히 '부자 되게 해주세요'를 넘어 가정의 평안과 행복까지 담은 그림이 됩니다. 여러 상징이 한 화면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 그게 민화의 방식입니다.
색도 중요합니다. 모란은 붉은색, 분홍색, 자주색 등 강렬한 색감을 씁니다. 처음 모란도를 그릴 때 저는 무조건 진하고 화려하게 칠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색을 너무 강하게 올리면 꽃이 무거워 보이고, 너무 연하면 모란 특유의 풍성함이 사라집니다. 색의 농도와 순서가 모란도의 완성도를 결정한다는 걸 수십 번 그리면서야 알게 됐습니다.
궁중 모란도와 민화 모란도는 다릅니다
모란도는 궁중회화와 민화 양쪽에서 모두 나타나는 소재입니다. 그런데 같은 모란을 그렸어도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궁중 모란도는 정교하고 엄격합니다. 꽃잎 하나하나의 묘사가 세밀하고, 구도도 규칙적입니다. 반면 민화 모란도는 훨씬 자유롭습니다. 색이 더 과감하고, 형태도 그린 사람의 해석이 들어갑니다. 잘못 그린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사실은 그린 사람의 개성이 담긴 표현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민화 모란도의 그 자유로움이 좋습니다. 완벽하게 사실적이지 않아도 되고, 내가 느끼는 모란의 풍성함을 내 방식대로 표현해도 되니까요.
모란도를 병풍으로 그리는 이유
모란도는 단독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병풍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러 폭에 걸쳐 모란이 가득 펼쳐지는 구성입니다.
이는 모란의 상징을 공간 전체에 퍼지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한 폭의 그림보다 방 전체를 모란으로 채울 때 그 기운이 더 강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특히 혼례 때 신부방 뒤에 모란 병풍을 치는 풍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 출발을 하는 공간에 부귀와 행복을 가득 채우고 싶은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는 모란
저는 지금도 모란을 자주 그립니다. 10년째 그리고 있지만 모란은 그릴 때마다 새롭습니다. 꽃잎 배치를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느낌이 나고, 색을 다르게 조합하면 같은 모란인데도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됩니다.
모란도가 민화 중에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깊고, 화려해 보이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모란도를 처음 그릴 때의 그 서툰 붓질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때 몰랐던 것들을 지금은 조금 알게 됐고, 지금 모르는 것들은 앞으로 그리면서 알아가겠죠. 민화는 그런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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