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화를 배우면서 가장 많이 그린 새가 뭐냐고 물어보면 학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까치도 많이 그리고, 봉황도 그리지만 학은 요청이 끊이질 않습니다. 장수 잔치 선물, 부부 기념 선물, 부모님 생신 선물.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을 때 사람들이 학을 찾습니다. 그만큼 학은 오랜 세월 동안 장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학도란 무엇인가
학도는 학을 중심 소재로 그린 민화입니다. 학(鶴)은 예로부터 오래 사는 새로 여겨졌습니다.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학은 장수와 고귀함, 깨끗한 삶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학도는 학만 단독으로 그리기도 하고, 소나무, 바위, 물, 구름과 함께 그리기도 합니다. 어떤 소재와 함께 그리느냐에 따라 의미가 더해집니다. 소나무와 함께하면 변치 않는 생명력이 더해지고, 구름과 함께하면 신선 세계와의 연결을 상징합니다.
학도는 십장생도에도 등장합니다. 열 가지 장수 상징 중 하나가 학입니다. 그런데 십장생도에서 학은 다른 소재들과 함께 등장하고, 학도에서는 학이 주인공입니다. 학이라는 상징 하나에 집중해서 그 의미를 깊이 담아내는 그림입니다.
학이 장수를 상징하게 된 이유
학이 왜 장수의 상징이 됐는지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학은 오래 사는 새입니다. 야생에서도 20~30년, 환경이 좋으면 더 오래 삽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도 학이 오래 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외모도 한몫합니다. 새하얀 깃털에 붉은 정수리, 길고 우아한 다리. 다른 새들과 비교했을 때 학은 확실히 고귀해 보입니다. 속세를 벗어난 듯한 그 모습이 신선의 이미지와 겹쳐졌습니다. 실제로 도교 그림에서 신선들은 학을 타고 하늘을 납니다.
그리고 학은 혼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쌍을 이루는 새입니다. 두 마리가 함께 있는 모습이 평생 해로하는 부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학을 그릴 때 가장 어려운 것
학도를 오랫동안 그려왔지만 학 그리기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특히 어려운 부분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흰색 표현입니다. 학의 몸 대부분은 흰색입니다. 그런데 흰색을 그냥 비워두면 허전하고, 너무 칠하면 무거워집니다. 흰 깃털 안에도 빛의 방향에 따라 미묘한 명암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때 학이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둘째는 균형입니다. 학은 다리가 길고 목이 긴 새입니다. 이 비율을 잘못 잡으면 전혀 다른 새처럼 보입니다. 특히 한 발로 서 있는 학을 그릴 때 무게 중심을 잡는 게 어렵습니다.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균형이 잡혀있는 그 자세를 표현하기 위해 스케치를 수도 없이 합니다.
학의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을 그릴 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날개 깃털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너무 뻣뻣하면 죽어있는 것 같고 너무 흐물거리면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 사이 어딘가를 찾는 게 지금도 가장 집중하는 부분입니다.
한 쌍의 학이 담는 의미
학도에는 보통 두 마리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쌍의 학입니다.
두 마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구도는 평생 함께하는 부부를 상징합니다.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함께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한 마리가 날고 한 마리가 지켜보는 구도는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를 담습니다.
장수 잔치 선물로 학도를 그릴 때 항상 두 마리를 그립니다. 혼자만 오래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진심에 가깝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받으시는 분들도 항상 그 부분을 좋아하십니다.
오래 사는 것과 잘 사는 것
학도를 오래 그리다 보니 학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단순히 장수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은 어디서든 고고합니다. 물가에 서 있을 때도, 하늘을 날 때도, 소나무 위에 앉아 있을 때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있습니다. 그 모습이 전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태도입니다.
민화 속 학이 조용히 서 있는 장면을 들여다보면, 급하지 않은 삶의 리듬이 느껴집니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자기 자리가 있고, 화려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있습니다.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품위 있게 살기를 바랐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학을 그리는 이유
10년 동안 학을 수없이 그렸는데 아직도 학 앞에서 긴장이 됩니다.
잘 그려진 학 한 마리는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존재감이 있습니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바로 티가 납니다. 그만큼 정직한 소재입니다.
그래서 계속 그립니다. 학을 잘 그리게 되는 날이 오면 민화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아직은 그 날을 향해 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