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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도란? 아직 안 그린 그림 - 복의 상징이지만 코로나가 바꿔 놓은 것

by mybottari 2026. 2. 10.

박쥐선인도 - 이미지 출처: 국립 중앙박물관, 공공누리 제1유형

 

 

어릴 때 놀이터에서 박쥐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 하늘에서 뭔가 이상하게 날아다니길래 처음엔 큰 나방인 줄 알았습니다. 가까이 보니 박쥐였습니다. 그때 기억이 신기하다, 였습니다. 무섭다가 아니라요. 뭔가 다른 생물 같은 느낌.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닌 것이 어둠 속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묘하게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박쥐 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 신기하던 동물이 어느 순간 전염병의 상징처럼 돼버렸습니다. 민화에서 박쥐는 복의 상징인데, 지금 시대에 박쥐도를 그려서 선물로 드린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박쥐도는 아직 안 그렸습니다. 언젠가는 그려봐야지 하면서도 우선순위에는 없습니다.

 

박쥐가 복의 상징이 된 이유

그래도 의미는 정말 좋습니다.

박쥐를 뜻하는 한자 복(蝠)이 복(福)과 발음이 똑같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발음이 같다는 이유 하나로 박쥐는 민화에서 복의 상징이 됐습니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논리입니다.

민화는 글자 대신 그림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회화입니다. 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 발음이 같은 박쥐를 그리면 됩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복을 떠올립니다. 박쥐가 날아들어오는 모습은 복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됩니다.

이런 언어 유희적 상징 방식이 민화 곳곳에 있습니다. 노안도의 노안(蘆雁)이 노안(老安)과 발음이 같은 것처럼요. 한자 문화권 특유의 상징 체계입니다.

 

오복과 박쥐 다섯 마리

박쥐도에서 박쥐가 다섯 마리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오복(五福)을 상징합니다.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입니다. 오래 살고, 재물이 있고, 건강하고, 덕을 쌓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삶의 조건 다섯 가지입니다.

박쥐 한 마리가 복 하나를 상징하니, 다섯 마리가 모이면 오복이 다 갖춰진 셈입니다. 그림 하나에 인간의 모든 바람을 담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박쥐도가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된 그림인지 느껴집니다.

박쥐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도는 하늘에서 복이 내려오는 의미입니다. 화면 중심으로 모여드는 구도는 복이 집 안으로 모이는 의미입니다. 같은 박쥐도라도 배치에 따라 담긴 의미가 달라집니다.

 

지금 박쥐도를 그린다면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박쥐에 대한 인식이 예전으로 돌아간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은 망설여집니다.

그런데 가끔 생각합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도 박쥐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닐 겁니다. 밤에 날아다니는 이 묘한 동물을 보면서 두려움도 있었겠지요. 그런데도 복의 상징으로 끌어들인 건, 그 불편한 존재를 긍정으로 바꿔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 봤던 그 박쥐가 다시 생각납니다. 신기하다고 느꼈던 그 감각. 무섭기보다 신비로웠던 그 순간. 그 시선으로 언젠가 한번은 박쥐도를 그려볼 것 같습니다. 아직은 우선순위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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