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서 나비를 그리다 보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먹을 조금 많이 섞었을 뿐인데 나비가 나방이 됩니다. 다리 선을 조금 두껍게 그었을 뿐인데 나비인지 잠자리인지 모를 것이 됩니다. 그래서 나비 그림은 선이 생명입니다. 선 하나 차이로 나비가 되기도 하고 나방 모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비를 제대로 그리려면 선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나비가 민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몇 마리를 그려야 하는지. 이걸 모르고 그리면 선은 잘 그려도 의미가 엉뚱해질 수 있습니다.

나비가 상징하는 것들
나비는 민화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 번째는 기쁨과 화합입니다. 나비가 꽃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기쁨과 자유를 상징합니다. 구속되지 않고 가볍게 살아가는 존재. 그래서 나비가 있는 그림은 화면에 생동감을 줍니다.
두 번째는 장수입니다. 한자로 나비 접(蝶)이 80세를 뜻하는 접(耋)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나비는 장수를 상징하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민화에서 언어적 유희로 상징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나비도 그중 하나입니다.
세 번째는 부부 화합입니다. 나비 두 마리가 함께 날아다니는 모습이 부부의 금슬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화접도는 결혼 선물로 자주 그려집니다. 꽃과 나비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부부의 아름다운 관계를 표현합니다.
네 번째는 변화와 재생입니다. 나비는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됩니다.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 그 변화가 새로운 시작과 재생을 상징합니다. 어변성룡도에서 잉어가 용이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나비는 짝수로 그린다
나비를 몇 마리 그려야 하는지가 처음엔 헷갈렸습니다.
우리나라 민화에서 나비는 짝수로 그리는 것이 기본입니다. 2마리, 4마리, 6마리. 나비 두 마리가 쌍을 이루는 것이 부부 화합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는 나비보다 함께 있는 나비가 더 길상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중국 민화에서는 홀수로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수를 강조할 때 홀수를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비 마리 수는 어떤 의미를 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혼 선물로 그릴 때는 짝수,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에 나비를 넣을 때는 홀수를 쓰기도 합니다.
처음엔 이걸 몰랐습니다. 화면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만큼 그렸는데, 나중에 마리 수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다시 보게 됐습니다.
화접도에서 나비의 역할
화접도는 꽃과 나비를 함께 그린 그림입니다.
꽃만 있을 때와 나비가 더해졌을 때가 완전히 다릅니다. 꽃은 고정돼 있지만 나비는 움직임을 만듭니다. 화면에 생동감이 생기고, 꽃과 나비가 서로 어우러지는 장면이 완성됩니다.
나비를 어디에 배치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꽃 위에 앉아 있는 나비, 날아가는 나비, 막 내려앉으려는 나비. 각각 다른 순간을 포착합니다. 날아가는 나비를 그릴 때는 날개가 약간 비틀린 각도로 표현해야 자연스럽습니다. 완전히 펼쳐진 나비만 그리면 나비가 전부 같은 포즈가 돼서 어색합니다.
먹을 많이 섞으면 생기는 일
나비를 그릴 때 먹 농도가 핵심입니다.
나비 날개는 얇고 투명한 느낌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먹을 많이 섞으면 안 됩니다. 농도가 진해지는 순간 날개가 무거워집니다. 가볍게 날아야 할 나비가 무겁게 앉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나방이 되는 순간입니다.
색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비 날개 색이 탁해지면 나방입니다. 선명하고 가벼운 색이어야 나비입니다. 먹 농도 하나, 색의 맑음 하나가 나비와 나방을 가릅니다.
날개 문양도 중요합니다. 나비마다 날개 무늬가 다릅니다. 민화에서는 실제 나비를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장식적으로 반복되는 문양으로 표현합니다. 이 문양이 너무 빽빽하면 무거워 보이고, 너무 성기면 밋밋합니다. 그 균형을 잡는 게 나비 날개 표현의 핵심입니다.
다리 선이 두꺼우면 생기는 일
나비 다리 선이 두꺼우면 잠자리가 됩니다.
나비 다리는 가늘고 섬세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세필로 아주 가늘게. 조금만 힘이 들어가면 선이 굵어지고, 그러면 나비 특유의 가벼운 느낌이 사라집니다. 다리가 굵으면 몸통이 강조되면서 잠자리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비 더듬이는 끝에 동그란 마디가 있습니다. 그게 나방 더듬이와 다른 점입니다. 더듬이 끝 마디를 표현하지 않으면 나방처럼 보입니다. 작은 디테일인데 나비와 나방을 구분하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선 하나의 굵기 차이, 더듬이 끝 마디 하나. 그래서 나비는 선이 생명이라고 하는 겁니다.
잘 그려놓으면 제일 예쁜 소재
그런데 나비를 잘 그려놓으면 민화 소재 중에 제일 예쁩니다.
가볍게 날아다니는 느낌, 날개의 문양, 꽃 위에 살짝 앉은 모습. 화접도에서 나비가 완성됐을 때 화면이 살아납니다. 꽃만 있을 때와 나비가 더해졌을 때가 완전히 다릅니다.
나방 모음이 될 수도 있고, 잠자리 모음이 될 수도 있지만. 선 하나하나 집중해서 그려놓으면 그만큼 보람 있는 소재가 나비입니다. 먹 농도 조심하고, 다리 선 가늘게, 더듬이 끝 마디 잊지 말고.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나방은 안 됩니다. 아마도요. ㅋㅋ